2026 경기 지붕없는 박물관
신평의 나이테
Annual Rings of Sinpyeong
2026. 07. 10. - 11. 30
새들 유휴공간
10:00 - 16:00, 주말 및 공휴일 휴관
참여작가: 김용현, 서성협, 전지홍, 한석경
주최·주관: 고양특례시 문화예술과
후원: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고양인쇄문화허브센터
📍개막식: 7.10(금) 17:30
《신평의 나이테》는 고양시 덕양구 신평동 마을이 겪어온 시간의 층위를 시각예술로 재구성하는 전시다. 일산신도시 개발과 자유로 건설이라는 화려한 성장 중심의 서사 이면에는, 변화의 속도에 가려진 채 흐름을 멈춰야 했던 마을이 존재한다. 이 전시는 신평동이라는 장소를 통해 거대 담론이 놓치고 지나간 고양시의 미시적인 기록을 다시 살피도록 기획되었다. 새 도로를 내기 위해 강을 내주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마을의 굳은살을 동시대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돌아보고자 한다.
예술창작공간 '새들'은 과거 군사 거점 중 하나인 '신평군막사'를 리모델링한 장소다. 건물 곳곳의 무기고, 창고, 통로, 옥상 등은 그 자체로 이러한 역사의 지층을 간직하고 있다. 전시는 한강하구의 생태적·지정학적 변화를 다룬 기록 자료와 함께, 이를 매개로 사유한 예술가들의 리서치 작업을 소개한다. 이 전시가 당시의 기록과 현재의 예술적 증언을 공명시키며, 보편적으로 말해지지 못했던 도시의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살피는 공간적 아카이브가 되기를 기대한다.
경청하기: 물이 남긴 파동
1970년대 초반 한강하구에는 철책선과 함께 초소와 막사들이 일괄적으로 구축되었다. 그중 2022년부터 고양시의 예술창작공간 ‘새들’로 운영되는 ‘신평군막사’는 1968년 1·21 사태 이후 전방 및 수도권 접경 지역의 경계 강화가 국가적 과제가 되면서, 국방부의 지침에 따라 설치되고 관리된 곳이었다. 이와 같은 냉전 시대의 산물은 2006년 ‘한강하구 철책선 제거 사업’ 정식 승인을 거쳐, 2012년 행주대교 부근 철거를 시작으로, 2022년에 와서야 제거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신평군막사의 무기고로 쓰였던 시설은 이러한 이데올로기 속에서 생업과 삶의 자율권을 국가에 내어준 신평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무기를 보관하던 차가운 공간이 생동한 서사로 채워진다.
마주하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저지대의 가옥들은 모두 외딴섬 같은 형상을 하고 있고 노도와 같이 흘러가는 황토색의 물결 곳곳에서는 소 돼지등 가축이 둥둥 떠다니며 구조를 요청하는 듯 울부짖고 있었다.”
- 「새벽"와르르"···마을마다 ‘수옥’」, 부산일보(1990.9.12.).
신평동이 위치한 고양시 덕양구는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평야 지형을 이룬다. 강폭이 넓고 밀물과 썰물의 차가 심한 한강 하구에 인접한 신평동은 토당동, 능곡동을 비롯하여 고양시 내에서도 고도가 낮은 상습 저지대 마을이다. 신평동의 옛 지명인 '신평리(新坪里)'는 과거에 한강의 유속 변화에 따라 수시로 섬이었다가 뭍이 되기를 반복하던 충적 삼각주로, ‘신평리 섬’으로도 불렸다. 도촌천, 풍동천, 대장천, 행신춘의 물줄기가 모두 이곳에 모여 한강으로 흐르는 물길이 이러한 지형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새들 건물의 뒤, 가늘고 긴 통로를 걸으며 자유로라는 고속화도로에서는 인식할 수 없는 시선을 마주하게 한다. 도시 건설 계획 단계부터 건물 높이와 건축물 매치 방향이 구체적으로 통제된 신도시 풍경 이면에, 화려한 수사가 닿지 않는, 고양시의 낮고 소외된 장소를 감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환기하기: 흐름, 교차, 생명
새들의 옥상에 오르면 신평동의 지형적 흐름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다. 기존의 폭 넓은 한강이었던 자유로 옹벽과 그곳에서 피어난 잡초를 뒤로하면, 흔히 알려진 일산신도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강물을 단절시킨 새 도로, 닿을 수 없는 비무장지대, 상징적으로 남겨놓은 철조망 등, 고착된 경계의 표상들을 흐트러트리는 것은 자연과 감각이다. 마을의 본모습과 현재 도시 풍경을 교차해 보는 이질적이고 생경한 감각과, 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바람과 생명을 관조해 볼 수 있는 장소다.
거두어내기: 웅크린 기억
마을의 가장 깊은 나이테를 들추어 보듯, 지하 창고에서는 신도시 서사에 가려져 있던 신평동의 역사 변곡점들을 이야기한다. 1970년대 철책선 설치와 1990년 한강 대홍수에 이어, 일산신도시 개발의 흐름 속에서 신평동 주민들은 수차례 생태적 생활권을 침해받았다. 급격한 군사 이데올로기와 도시화가 작동하며 ‘새로운 땅’이었던 신평이 겪은 변화의 흐름을 살피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당시의 신문 기사와 행정자료 등의 공적 기록과 수십 년이 지나 예술가들이 다시 기록한 사적 증언이 교차한다. 전시는 이 기록들이 과거의 단면일 뿐만 아니라, 지금의 도시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데이터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기록물들은 도시의 역사가 하나의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며, 개발 중심의 도시사에서 소외되었던 미시적인 요소들에 주목하게 한다. 대면하거나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도시를 증언하고 지속시키는 실천임을 공유하는 장소다.
글: 김유빈(고양시 문화예술과 큐레이터)